삼각지 국수 한 그릇
우동 한 그릇’은 이미 오래 전에 한국인까지 사로잡은 일본 동화다.
해마다 섣달 그믐밤 늦게 우동집에 찾아와
한 그릇만 시키는 어머니와 두 아들을 위해
주인은 면을 더 담아주고 가격표도 낮춰 써놓는다.
세 모자는 주인의 티내지 않는 배려에 삶의 용기를 얻는다.
10여년 뒤 그 어머니와 훌륭하게 장성한 두 아들이 찾아와
우동 세 그릇을 시키자 우동집은 눈물바다가 된다.
찾아보면 동화보다 진한 실화가 우리 주변에 적지 않다.
서울 용산의 삼각지 뒷골목 ‘옛집’은 탁자 넷 놓인 허름한 국숫집이다.
할머니가 25년을 한결같이 연탄불로 뭉근하게
우려낸 멸칫국물에 국수를 말아낸다.
10년 넘게 값을 2000원에 묶어놓고도 면은 얼마든 더 준다.
연전에 이 집이 SBS TV에 소개된 뒤 나이 지긋한 남자가
담당 PD에게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사내는 15년 전 사기를 당해 재산을 들어먹고 아내까지 떠나버렸다.
용산 역 앞을 배회하던 그는 식당들을 찾아다니며 한끼를 구걸했다.
음식점마다 쫓겨나기를 거듭하면서 독이 올랐다.
휘발유를 뿌려 불질러 버리겠다고 맘 먹었다.
할머니네 국숫집까지 가게 된 사내는 자리부터 차지하고 앉았다.
나온 국수를 허겁지겁 먹자 할머니가 그릇을 빼앗았다.
그러더니 국수와 국물을 한가득 다시 내줬다.
두 그릇치를 퍼넣은 그는 냅다 도망쳤다.
할머니가 쫓아 나오면서 뒤에 대고 소리쳤다.
“그냥 가, 뛰지 마. 다쳐!” 그 한 마디에 사내는 세상에 품은 증오를 버렸다.
파라과이로 이민 가서 꽤 큰 장사를 벌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