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자태실은 성주군 월항면 선석산 아래 태봉(胎峰) 정상에 있으며,

세종의 적서(嫡庶) 18왕자와 세손 단종의 태실 등 19기가 군집을 이루고 있다.

태실은 왕실에 왕자나 공주 등이 태어났을 때 그 태를 넣어두던 곳을 말한다.

전체 19기중 14기는 조성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나

세조의 왕위찬탈에 반대한 다섯 왕자의 태실의 경우 방형의 연꽃잎이

새겨진 대석을 제외한 석물이 파괴되어 남아 있지 않으며,

세조 태실의 경우에는 즉위한 이후 특별히 귀부를 마련하여

가봉비(加封碑)를 태실비 앞에 세워두었다.

조선 세종 20년(1438)에서 24년(1442)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태봉은 당초 성주이씨의 중시조(中始祖) 이장경(李長庚)의 묘가 있었는데

왕실에서 이곳에 태실을 쓰면서 그의 묘를 옮기고 태를 안치하였다고 한다.

한편 1977년 태실에 대한 보수시 분청인화문대접·뚜껑,

평저호 및 지석(誌石) 등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세종대왕자태실은 조선초기 태실형태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며

우리나라에서 왕자태실이 완전하게 군집을 이룬 유일한 예라는 점,

그리고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왕조교체와 함께 왕실 태실 조성방식의

변화 양상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 홈페이지에서...

 

1361년(고려 공민왕 10년) 신광사의 주지가 되어 절을 현재의 자리로 옮겼으며

나옹대사가 새로 절터를 잡고 터를 닦는데 큰 바위가 나왔다 하여

『터 닦은 선(禪)』자를 넣어 사찰의 이름을 선석사라 고쳤다.

지금도 대웅전 앞뜰에 묻힌 채 그 머리 부분만 땅위로 내밀고 있다.,

선석사는 통일신라 효소왕 1년(692) 의상대사가 지금의 자리보다 서쪽에 신광사라 이름지어 세웠다.

그 뒤 고려 공민왕 10년(1361) 나옹대사가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겼다.

.당시에 새로운 절터에서 큰 바위가 나왔다 하여 터닦는 다는 뜻을 가진 ‘선(禪)’자를 넣어 선석사라불렀다..

 

주차장에 동네 아주머니가 어묵등 파는데 키우는고양이 식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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