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도 굴곡이 많았나보다.

군대입대전 79년,80년도에 하루일당17만원이상은 벌었었다.

그땐 여관방장기임대가 컬러TV주고 한달에 6만원정도였으니

요즘 모델장기방이 30여만원 정도하니 가히 짐작이 안된다.

그 돈을 박*근이라는 노름꾼에게 다 빌려주고 좋은소리도 못듣고 살았다.

그 친구 노름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딸에게 먹일 우유값이 없어서 고아원에 딸을 맡겼었다.

지금 그 딸 나이는 30살 정도 되지 않았을까 ?? 

잘 나가던 97년도 보증을 서 주는 바람에 하루 아침에 빈 털털이가 되었다.

그때 아내는 '어딜가서 포장마차라도 해서 먹여 살릴테니 걱정말라며 내 어깰 두드렸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살고있는것 같다......

그때 봉급에 압류가 없는 직업을 찾다보니 인테리어자영업을 시작했다.

자존심 강한 아내가 어딜가서 떳떳이 소개할 정도의 직업은 아니었지만

정직하게 하다보니 일은 잘 되었다. 잘 될때는 한달에 수백만원씩의 수입도   있었지만 그만큼 힘든직업이었다.

 

내가 봉사활동을 시작한것은

 경북 구미시 선산읍 성심양로원에 계시던 데레사수녀님 덕분에 봉사활동을 많이 했었다.

그일 이후로 내 일도 잘 되는것 같았다.

잘 되면 내 이웃때문에 잘 됐다고 생각하고 봉사활동을 더 열심히 했다.

 

지금은 김해시 종합사회복지관 재가팀에서 마음 맞는 몇분이 모여서 한달에 한번이상 요양원이나 복지관,교도소등

복지시설에 위문공연을 가자고  하여 매달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늘 안스러운것은 복지관 경로식당이나 요양원에 계시는 분들은 그나마 형편이 좋은분들이다.

복지관이나 요양원에 못 가시며 쪽방에서 서러운 생활하시는 분들이 주위에 많이 계신다.

그 분들은 자식도 없고 누군가 도와주는맨토도 없다.

버스터미널 근처에 가면 꼬부랑 할머니님이 아침 해뜨는 시간이면 집 앞 의자에 앉아서 해 져야 들어가신다.

집에 추워서 바깥 햇볕이 더 따스하기 때문이다.

그 할머님도 원래는 김해시 종합사회복지관에 해택을 받았는데 그 할머니 따님이 '사회복지사'자격증을 딴 모양이다.

취직을 해 볼려고 요양원을 찾았더니 나쁜 요양원에서 할머니 세분을 모시고 와야 취직이 된다고해서

자기 어머니를 모시고 그 요양원으로 가셨나 본데 어찌 잘못되어 그쪽에서 퇴사되고

복지관에도 들어가지 못했단다...

 

지금 70억 인구중에 상위 몇%는 많이 먹어서 비만으로 고생하고 넘 잘먹어서 병으로 고생하고

하위 몇%는 지금도 굶어죽는다는 영상을 어제 본적이있다.

아프리카 에서나무뿌리로 연명하면서 어릴자식에게 먹일게 없어서 굶어죽는 영상을 봤을때

화성탐사선까지 보내고 선진국을 외치는 이때 굶어죽는게 말이 안되는것 같았다.

허긴 우리 나라도 굶어죽는 일이 비일 비재하다.

얼마전 영화시나리오 작가도 굶어 죽었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이제 얼마있지 않으면 내 나이도 50대 중반을 넘어선다.아니 벌써 들어섰는지도..............ㅎㅎ

리모델링일도 이젠 벅차게 느껴진다.젊은 아줌마들 비위도 맞춰야 하고 기사들 시키는것도 그렇고....

나이들기 전에 좀더 좋은일을 하고 싶지만 아직 그럴만한 여유가 없네...후후~~

 

2013년초 아들 군대 전역할 때까지만 인레리어 사업을 하고 그 다음은 어디 변두리라도 아담한 찻집같은걸 구입해서

점심때는 불우이웃에게 따뜻한 식사 한끼 무료대접하고 저녁때는 나이든 황혼 인생들이 모여

노래하고 간단히 요기도 하고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는 그런 공간을 간직하고 싶다.

 

마음이 허전하던지 배가 고프면 누구라도 찾아와 따뜻한 국수한 그릇이라도 먹고

이야기 할 곳없이 혼자사는 외로운 노년을 웃고 즐기고 노래하는 그런 공간

인생을 아름답게 보낼수 있는 그런공간..................

언제나 웃음꽃이 피는 황혼의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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